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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시대는 어쩌다 이런 상처를 남기고3

4.3의 아픈 흔적을 찾아 차는 서부관광도로를 힘차게 달리더니 동광검문소로 미끄러지고 있다. 헛묘는 지금의 동광리 검문소 6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창천으로 빠지는 길과 대정쪽으로 연결된 길 사이의 삼각지점에 있다. 헛묘를 찾아가 보니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백일홍만이 이곳에 묻히지도 못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 같다. 시신도 없어서 유품만 묻은 헛묘, 제주사람은 두 번 호사 하는데 그것이 혼인할 때 뭇사람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것이고 죽어서 꽃상여를 타고 가족과 친지들의 눈물속에 이승을 떠나는 것인데 그 호사도 못누렸으니 그 말못할 아픔에 코끝이 찡해 온다. # 시신도 못찾아 혼만 묻은 헛묘......한번 호사도 못하고 이곳 헛묘에 묻힌 사람들은 무등이왓 사람들이다. 4.3당시 수만이 죽어가던 시절에 시신을 못찾아 묘만 묻힌 곳이 .. 2011. 6. 26.
잠들지 않는 남도 4.3의 발발과 전개 한국현대사의 최대의 비극이라면 한국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의 이익다툼과 이데올로기의 이념적 내부대립으로 인해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48년 4월3일을 기해 본격적으로 분출된 제주 4.3은 그러한 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대변해주는 해방정국의 민족모순을 집약적으로 극명하게 표출시킨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4.3의 원인과 배경을 차치하고 가장 신성시돼야할 인권이 무자비하게 유린됐다는데 있다. # 해방정국의 민족모순 극명하게 표출 얼추잡아도 2만여명에 이르는 제주도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4.3은 당시 도내 인구가 27만여명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피해자가 10명중 1명꼴이라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이는.. 2011. 6. 26.
빗나간 야욕이 부른 시대의 상처 조금은 우울한 마음을 쓸어내리고 삼의사비에서 차를 돌려 동쪽으로 5분여 거리에 보성초등학교가 나오는데 그 정문에 묘비하나가 소슬하게 우리를 맞는다. 이름하여 '동계 정온 유허비'. 정온(1569~1642)은 광해군 때 제주에 유배되어 10년 동안 생활하다가 인조반정으로 유배가 풀려 떠난 사람으로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본관은 초계(草溪) 진사 惟明의 아들이다. 광해군 6년(1614) 부사직(副司直)으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인륜에 어긋났음을 상소하고 그 가해자인 강화부사 정항을 참수하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해 8월 대정현 인성리에 유배된다. 유배생활 중에 「덕변록(德辨錄)」․「망북두시(望北斗詩)」․「망백운가(望白雲歌)」를 짓기도 했다. # 동계 정온 '스승을 버리고 소신을 택하.. 2011.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