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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오름마다 전해지는 끝모를 이야기들

제주섬속의 전설-오훈장과 정지관

by 여랑 2011. 5. 18.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에 당시 정의현에 속했던 현재의 성산읍 오조리에 오훈장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한학에 능하며 지리에도 밝아 도내에서 따르는 사람이 많아 목사도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인품과 학식이 높았다.

오훈장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배움을 청하러 도내 전역에서 찾아왔고 그래서 많은 후학들을 두고 있었는데 고성리의 정지관이라는 사람도 오훈장에게 배움을 얻어 지리공부를 했다.

이후 더욱 공부에 열중하여 가까운 주변에서는 지리에 관해서만은 정지관이 오훈장보다도 낮다는 말들도 했다. 그러나 오훈장은 후학인 정지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정서방 따위가 뭘 안다고...”고 하는 등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고 다녔다.

그래도 정지관은 스승의 말이라 크게 게의치 않고 다녔다. 정지관의 실력이 알려지면서 이제 정의현 안에서는 조사가 나면 으레 묘자리를 봐주는 사람으로 정지관을 청했고 동시에 의논을 하여 장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오훈장도 불러야 했다.

이는 둘다 지리에 능통하기도 했거니와 만일 오훈장에게 의논을 아니하면 자기를 무시하였다하여 오해를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후일에 학식과 인품이 높은 오훈장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 처신이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오훈장은 대놓고 하지는 못해도 은근히 정지관을 누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중산간 마을인 난산리 어느집에 조사가 났다. 이 집안은 정지관과 가까운 사이여서 정지관에서 묘자리를 부탁했고 오훈장도 초청해 함께갔다.

세 사람은 묘자리를 보러 들판으로 나갔고 마을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안가 주위를 두루 살피다가 오훈장은 목장의 담장안으로 들어가 앉으며 “여기가 적당하군”하고 말했다.

그러나 정지관은 담장 바깥으로 가서 앉으면서 “여기도 한 자리 쓸만하지 않습니까?”하고 의중을 물었다.

오훈장은 “거기 보다는 살짝 올라앉은 여기가 더 적당하지”라고 했고 정지관은 “그런가요”했다.

상주는 판단을 못하고 우선 점심이나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며 오훈장 쪽으로 가서 가져온 점심을 풀었다.

“정지관도 이쪽으로 와서 점심을 하자고”

상주와 오훈장이 청했지만 정지관은 점심이 차려진 곳으로 가려하지 않고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라며 고집을 부렸다.

상주는 묘자리로 오훈장이 추천한 곳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나 이 집안에 흉사가 자주 발생하자 묘자리를 잘못썼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그는 정지관을 찾아와 하소연 하자 정지관은 “내가 그때 담장아래 앉아서 ‘여기가 좋다, 여기가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때서야 정지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묘를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문이 오훈장에게 들어갔다.

오훈장은 이번기회에 정지관의 기를 톡톡히 눌러놔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정지관을 시험하기로 했다.

“자네 묘자리 잘 본다고 소문이 났는데 우리 어머니 산터 좀 봐주게”

“스승님 어머님 지금 묘자리는 옮기는게 낮습니다”

“왜”

“무덤을 파서 관을 열어보면 눈이 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쩔건가”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실제로 묘를 파서 관을 열어보니 시체가 눈을 뜨고 있었다. 정지관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양시지지(養屍之地)기운이 많은 곳이어서 시체가 눈을 뜨고 손톱, 발톱이 점점 커 가는 땅이었다.

오훈장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하고 물었다.

정지관은 낫을 가져 오라고 해서 시신 위를 덮은 끈을 뚝뚝 끊어 햇빛을 비치게 했다. 잠시 햇빛을 받으니 시체가 눈을 감고 원래대로 돌아갔고 이를 본 오훈장은 묘자리를 하나 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스승님 제가 본 자리가 마음에 드시겠습니까?”

정지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노공이술이란 곳에 가보면 돌무더기가 있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치워서 쓰시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곳은 정지관이 좋은 터임을 알고 오래전에 다른 사람이 묘를 못쓰도록 돌멩이를 모아 눈가림을 해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찾은 오훈장은 한참을 살펴보더니 아무래도 자리가 좋지 못하다며 이장을 하지 않았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지관의 어머니가 숨을 거뒀다. 정지관은 그 자리에 모친을 묻었다. 장사를 치르는 날 오훈장은 그 곳을 다시보게 되었는데 예전에 봤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묘를 써놓고 보니까 너무나도 좋은 자리였던 것이었다.

그제야 오훈장은 정지관을 한쪽으로 불러 “자네 눈이 내 눈보다 훨씬 낮네”하며 크게 후회하고 정지관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