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여행정보/오름의 왕국

사라악 -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넋놓다

by 여랑 2011. 10. 19.

너무나 화창한 가을날이다. 끝을 보이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무덥던 한여름의 무더위도 이제는 한풀꺾인 듯한 날씨이다.

그동안 더운 날씨 탓에 가지못하던 답사를 약 3개월만에 재개하게돼 기쁜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이제 우리회원도 많이 늘어 8명이나 됐다.

또한 오늘 처음 합류한 회원도 있다. 서로가 스스로 좋아서 참여한 회원들이라 적극적으로 행하고 마음맞게 같이 다니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모두 모인 것은 6명, 2명은 개인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참가하고 싶었어도 나름대로 더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의 답사일정을 사라오름, 선돌, 아부오름, 가시리 충의사 등으로 잡아 본다.

# 아직도 자랑(?) 스럽게 명명되는 군사쿠데타의 잔재 '5.16도로'

차는 5.16도로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길을 달린다. 굽어지면 펴지고 펴졌다 다시 굽어지는 길을 가면서 인생도 이렇게 굴곡이 많겠지 생각해본다. 5.16도로,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해 공사를 시작하면서 도로이름도 5.16으로 명명했다.

5.16도로

성판악에는 이 도로 개통을 기념하여 만든 비석에 그 의미를 새겨놓기도 했다. 이제는 역사의 재평가 작업이 활발해져 5.16을 어떻게 자리매김 하느냐를 놓고 말도 많고 논쟁도 벌였지만 5.16은 역시 헌정사를 중단시키고 일부 군부세력이 저지른 군사쿠데타로 규정하는데 일정정도 합의를 찾았다.

역사에서는 만일이라는 것이 성립되지도 않고 결과적인 성과를 놓고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지만 5.16 당시 군부세력이 내세운 것들이 그들이 아니면 이 나라의 발전을 보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오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이 얼마나 우리나라의 민주적 역사발전을 가로막았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부분일수밖에 없다. 12.12사태도 재평가를 요구받고 있고 5.6공화국도 새로운 판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고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계속 우리사회를 난타했었다.

하기야 그런 세상사야 어쩌면 우리같은 서민에겐 먼나라의 이야기로 접어두기로 하고 오늘은 가을의 소슬함에 너무 잘 어울리는 사라오름과 제주의 무릉도원이라는 선돌에 올라 그러한 속세의 욕심을 떨쳐버리는 것이 더 시원할 것이라 믿어본다.

# 소슬바람 부는 날에 아무하고나, 아니면 혼자라도 사라악에 가자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등판코스로 접어든다. 숲터널이 이어지는 등산로로 들어서니 싱그러운 삼림욕을 느낄 만큼 머리가 맑아진다.

경쟁하듯 울어대는 산새들 소리, 계곡을 따라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등 이러한 소리와 아울러 숲속을 질주하는 노루들의 발자국 소리는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언젠가 두번째 사라오름에 올랐을 때 너무나 높고 파란 가을 하늘아래 느껴지는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넋놓고 한참동안을 서 있었다.

가을의 소슬함에 너무 잘 어울릴 정도로 혼자만의 방문도 좋은 곳이지만 이렇게 여럿이서 사라오름을 찾아 가는 것도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

사라악으로도 불리는 사라오름은 남제주군 남원읍과 북제주군 조천읍의 경계에 걸쳐 있는 오름이다. 한라산 정상을 등정하는 코스중 거리가 9.6㎞로 다소 먼 성판악 코스는 반면 경사가 완만해 여유를 즐기면서 오를 수 있다.

사라오름은 정상까지 거리중 절반을 조금 넘는 해발 1200여m에 사라악대피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개울이 하나 나오고 길게 가로 누운 고목 옆으로 보면 사라오름 북서사면을 타고 오르면 된다.



길게 가로 누운 고목 옆에 사라오름으로 오르는 오솔길을 찾고 이곳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왼쪽 숲비탈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이곳을 찾기가 그리 쉽지가 않아 여름철에도 지나치기 쉬워 꼼꼼히 살펴보며 가야할 정도이다.

처음 우리들은 사라오름을 찾아 나설 때 단순히 지도를 보고 성판악 코스로 가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갔다가 무척이나 고생을 한적이 있었다.

기행 초창기,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어느 날 답사팀들은 여느때처럼 약속장소에 모였다.

그런데 정작 목표지점인 답사장소 선정문제가 난관에 봉착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무리하게 짜놓은 답사일정으로 인해 흥미유발과 동기부여의 의미가 떨어진다는 일부 회원들의 지적이 있어 틀에 박힌 답사일정에서 벗어나 무작위 추출식의 선별답사를 계획했던 터였다.

# 답사 초기 길도 모른체 감행한 무모한 도전

회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답사장소를 물색했지만 선뜻 적격의 답사장소를 내놓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데 누군가가 날씨가 더우니 시원한 물에 풍덩빠져 봤으면 좋겠겠다는 농담투의 말을 꺼냈다. 우리는 거기서 기발한 힌트를 얻고는 물있는 곳을 찾아 답사하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장소가 문제였다. 물있는 곳이 어디 한두군데도 아니고 기왕지사 답사라면 그냥 아무데나 무턱대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이 있는 곳이면 바다로 가든지 계곡으로 가야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고민은 계속되는데 지도를 계속 주시하던 한 회원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 TV에서도 보고 사진에서도 봤는데 한라산 근처에 백록담 만큼이나 큰 분화구를 갖춘 오름이 있는데 지도를 가리키며 이 오름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라오름의 맑은물. 우리는 첫 답사에서 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라악을 찾아 떠났다. 사실 답사라는 것이 계획속에 떠나는 것은 나름대로의 기대감과 흥미가 더할지도 모른다. 어느정도 알고 찾아 나서는 것과 모르고 찾아 나서는 것의 차이점은 엄청난 것일 수도 있다. 모르고 찾아 나서는 행위는 아무래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때에는 사라악대피소 조금위에서 오솔길로 들어선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무조건 숲지대를 벗어나는 진달래밭까지 가서 아래쪽을 관망한후 찾아 나선다는 계획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리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진달래밭까지 가서 지도를 펴놓고 방향을 잡고 아래를 관망하니 사라악으로 보이는 분화구 모양의 오름이 보였다.

직선 거리로 간다면 30여분이면 사라악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같았다. 그러나 산에서 보는 거리하고 실제 거리가 그렇게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그때 처음 느꼈다.

단지 사라악만 확인한 우리는 길도 모르는 숲지대로 들어서서 오름방향만을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밀림지대만 벗어나면 금방 사라악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밀림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우리 진군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빽빽이 가로막은 가시덩굴 숲을 겨우 벗어나면 푹푹 빠져대는 늪지대가 나타나고 늪지대를 통과하면 다시 가시덩굴 숲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장애물 보다도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사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진달래밭에서는 관망할 수 있었던 목표지점이 밀림속에선 전혀 보이질 않으니 어디까지 왔는지 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갈증은 몹시 심했지만 물이 없으니 모두들 탈진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한 회원이 위치를 관망하기 위해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멀지않은 곳에 커다란 오름이 우뚝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앞장서서 밀림숲을 헤쳐 나가는 것을 보면서 금방 도착될 것같은 목표 지점이 한시간을 더 나아갔지만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 금방 생기를 찾았던 회원들은 이제 더 이상은 못가겠다며 풀썩풀썩 주저앉기 시작했다.

진퇴양난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은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되돌아 갈수도 없었다. 완전히 밀림속에서 미아가 돼버린 느낌.

다른 회원이 다시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보니 아까 보았던 정반대 방향쪽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려와 '저쪽 방향이다'며 앞장서서 걸어간다.

말할 기력도 없어 누구하나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우리는 군대에서 산악행군을 할때처럼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다.

# 희망이 실망으로 짙어가는 와중에 나온 '와 물이다' 외마디 탄성

그렇게 30여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급경사가 나타나는데 '야 오름이다'라고 누군가가 외쳤다. 그것은 분명한 오름이었다. 이 오름이 사라악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급경사가 이루어진 걸로 보아 오름임엔 틀림없었다.

피곤함도 잊은채 허겁지겁 오름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고 오름 정상에 다다른가 싶더니 다시 아래쪽으로 깊숙한 경사로 내달렸다.

먼저 달려간 한 회원이 '물이다'하는 외마디 탄성. 그때처럼 물이라는 소리가 반가웠던 때는 없었다. 모두가 내달린 그곳에는 물이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넓다란 분화구에 푸른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커다란 호수였다. 이름하여 사라오름, 우리가 지도만 갖고 객기로 찾아 나선 사라악을 6시간만에 드디어 만난 것이다.

우리는 한참동안 사라악 호수의 비경에 빠져든후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이 있는 오솔길로 길을 잡았다. 그렇게 10여분을 걸었을까 우리는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사라악 대피소에서 조금위에 있는 등산로와 만난 것이다.

그렇게 엄청나게 방황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사라악은 더욱 기억에 남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소슬한 바람이 부는 그해 가을 혼자서 사라악을 다시 찾았다.

# 다시찾은 사라악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사라악대피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개울이 하나 나오고 길게 가로 누운 고목 옆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사라오름 북서사면을 타고 올랐다.

비탈길을 15분 정도 오르노라면 나무들 키가 차츰 낮아지고 진달래들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활짝 하늘이 열리는데 이곳이 바로 사라오름, 사라악 정상 분화구이다.

거기에 떠올라온 무대장치처럼 잔잔한 산정호수가 둥그렇게 안겨져 있다. 4월인데도 북사면에는 잔설이 남아있다. 거기 물오리가 몇 마리 아장거리며 이른 봄 햇볕속에 잔설의 소요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가을에 북쪽 나라에서 날아와 겨울을 지내는 저들은 어디서 겨울을 나서 이제 또 어느 먼 북녘으로 가다가 여기에 머문 것일까.

                                   사라오름 남사면에서 보이는 장쾌한 눈맛의 경관

사라오름은 표고 1325m, 호수 둘레가 250m, 분화구 둘레는 1.2㎞나 된다. 백록담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화구호로 호수의 깊이가 깊지는 않아 가을에는 맑디맑은 수정같은 물을 자랑하하면서 그속에 불붙는 오색단풍을 비춰주기도 하지만 가뭄때는 말라버리기도 한다.

이 산정호 주변은 사라, 개미목, 영실, 등 제주의 6대 명혈의 하나로 쳐오는 곳으로 손꼽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분화구 안에 여러개의 무덤도 있다.

특히 남사면 능선에서 한라산 정상을 등에 엎고 해안가까지 내려다 보는 웅장한 풍광은 어느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쾌함을 준다.

이웃의 흙붉은오름을 필두로 동쪽 지호지간에 성널오름, 남동쪽 가까이 논고오름 등 굵직굵지한 기생화산이 버티고 있고 논고오름뒤의 꼭대기에 물이 빛나는 것은 동수악, 그 너머로 푸르스름한 안개속에 떠 있는 동반부 일대의 오름들이 다도해를 무색케 하며 제1횡단도로에서 수려한 경관을 갖추고 있는 수악계곡도 이곳 사라오름에서 발원한다.

'제주여행정보 > 오름의 왕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여행 가볼만한 오름  (0) 2013.10.24
오름이란?  (1) 2011.11.23
오름이 없는 제주를 상상할 있을까?  (0) 2011.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