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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정보/오름의 왕국

오름이 없는 제주를 상상할 있을까?

by 여랑 2011. 10. 19.

멀리 남쪽에는 한라산이 정상부근만 약간 가린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으젓하게 앉아 있다.

한라산은 도내 어디에서도 보인다. 그런데 그 형태는 보는 곳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며 또한 보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기도 한다.

누군가가 한라산의 모습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보았을 때 서로 각각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본적이 있다.

제주시쪽에서 보았을때는 당당한 기세로 굽어보면서 깊은 골짜기를 드문드문 드러내기도 하며 서쪽에서 보았을땐 꼭대기가 좀팍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면서 큰 누님같은 다정다감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주시 도두동에서 바라본 한라산

동쪽에서는 바다까지 뻗어내린 산줄기가 아주 뚜렷해 말달리는 기상이라고도 했으며 서귀포쪽에서 보면 마치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뒷동산 같은 느낌을 준다.

# 바라보는 지역에 따라 다른 맛을 주는 한라산

어느 산이든 그렇겠지만 한라산 역시 보는 사람이 위치에 따라 그 형세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이곳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관음사에서 바라본 한라산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가기가 본 한라산의 모습이 그리고 자기가 사는 그 마을에서 보는 한라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차를 차고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이나 동쪽을 달리게 되면 또는 중산간 도로를 타고 가면서 차창너머로 한라산을 바라보면 위치가 변함에 따라 한라산의 외형은 달라진다.

특히나 한라산과 가까운 서부관광도로나 동부관광도로를 달리다가 산을 보면 각각의 위치에서 전혀 다른 산을 만난다.

                                                    제주시 서부에서 바라본 한라산
차를 차던지 자전거 하이킹을 하던지 섬을 한바퀴 돌게 되면 한라산은 그 위치에 따라 수없이 많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많은 모습의 한라산도 크게 나눠 형태를 정의하기도 하는데 제주시에서 바라보면 하늘로 치솟은 정상 봉우리와 그 바로 발밑으로 깊게 패인 계곡이 그대로 그러나서 험준한 산세의 위용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범속한 인간이 함부로 가까이 하지 못할 이질감과 그에 따른 경외감, 그 험한 산준령의 초인적인 힘이나 그 깊숙한 계곡의 신비함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반면 서귀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제주시에서 보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서귀포시 중심을 벗어나 홍로마을 바로 뒤부터 한라산 밀림은 시작되는데 바로 고도가 급상승한다.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따라서 한라산 몸체가 바로 사람들 눈앞에 버티어 있어 아주 산이 가깝게 보이는데 수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 등걸이나 잎들의 미세한 흔들림까지도 눈으로 보일 것같다.

그 삼림지대를 지나면 정상  봉우리가 툭 튀어나와 웅크리고 앉아 있다. 구름이 삼림지대를 기릴때면 구름위나 하늘 한복판에 백록담 정상이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을음 볼 수 있다.

광활한 벌판인 교래리같은 평원이나 그보다 조금 더 내려가는 송당마을로 가는 초원지대에서 보는 한라산의 맛은 또 다르다.

교래리 평원에서 한라산을 보면 제주가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방에 쭉 둘러있는 오름들로 인해 바다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 동쪽 백약이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섬의 동쪽끝인 성산포나 고산또는 대정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을 또 다른다. 우선 산은 멀리 앉아 있다. 번잡한 세상사와는 아주 멀리 있는 듯한 모습으로 일상사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아주 단절돼 있는 것처럼 초연하게 서 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으며 서귀포에서 보는 한라산이 한달음에 달려가면 금방 오를 것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곳에서 주는 느낌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을 보는 것만큼이나 오르기에 멀리 느껴진다.

한라산의 보는 맛은 이외에도 섬속의 섬에서 조망하는 것도 제격이다. 특히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보면 모슬포와 사계리의 평원위에 밭 경계를 만들어 놓은 졸망졸망한 평원이 눈에 들어오고 중산간의 산기슭 지대를 지나 외롭게 멀리 떨어져 있다.

                                                최남단 마라도에서 바라본 한라산
눈에 보이는 한라산 정상 봉우리는 사람의 허리쯤 밖에 안느껴질 정도로 얕게 보인다.

한라산을 보는 맛은 그 위치에 따라 다를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인다.

4월 어느날 봄비를 한껏 뿌려 먼지 등이 씻겨내린 다음날 보는 한라산은 손길이 닿을 만큼이나 가깝고 청명하게 보이고 가을에 보는 한라산은 그만큼 더 멀리 보인다.

특히 해안지대에는 봄꽃이 활짝피고 감귤원에도 꽃향기가 코를 진동하는 계절에도 잔설이 남아 있는 한라산의 정상을 볼때면 이질감을 넘어 또다른 세계에 있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산 15-1번지인 한라산 최고봉인 백록담의 높이를 잰 사람이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독일인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라산 백록담의 높이가 1950m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지점은 서쪽이고 성판악과 관음사코스를 통해 오르는 동릉의 높이는 이보다 17m가 낮은 1933m에 불과하다.

한라산의 높이가 1950m라는 사실은 1901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라산에 오른 독일의  지리학 박사인 지그프리트 젠테(Siegfroied Genthe, 1870~1904)에 의해 측정됐다.

# 제주섬 개벽신화의 주인공 설문대할망의 영원한 거처 물장오리

물장오리는 한라산, 오백나한과 더불어 신성시 해온 3대 성산의 하나로 제주시 아라동과 봉개동 경계에 걸쳐있다.

2006년 제주특별쟈치도 행정개편이 이뤄져 이제는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통합됐지만 5.16도로(제1횡단도로)상 과거에는 제주시와 북제주군 경계에 있는 다리(물장올교)가 이 오름의 길목이 되며 표고는 937m인 오름이다.

                                              물장오리 정상에 있는 분화구 습지

다리 옆으로 난 숲길로 들어서면 초입부터 무성한 조릿대가 무릎 언저리서 바스락거리고 구불구불 골짜기를 끼고 걷노라면 싱그러운 숲 냄새와 함께 청량한 공기가 싸하게 감싸 깊은산속임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등산로를 버리고 비탈길을 오르는 오솔길이 있는데 이길이 지나치기 쉬운 사라오름을 가는 것처럼 물장오리 정상을 가는 길도 입구에서 10여분쯤 간후 주의깊게 살펴보면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난 길을 잡지못하면 상당히 헤메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물이 흐르지 않는 작은 골짜기를 두세차례 건너가고 건너왔다가 다시 건너가면 비탈은 점점 가파라지면서 숲 그늘이 하늘을 가린다.

계속해 조금더 가다보면 입구에서 걷기 시작한지 40여분쯤이면 앞이 확 트이면서 열려오는 산상의 신비경, 울창한 숲과 능선으로 둘러싸인 검푸른 화구호의 물장올 정상을 만나게 된다.

잔물결조차 일렁거리지 않는 호수의 표면에는 무거운 산중의 고요가 깔리고 속세의 몸으로는 범접키 어려운 기운이 감도는데 수심을 헤아릴수 없다고 하여 '창터진 물'이라고도 불리며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물이다.

산정호수 둘레는 400여m, 화구의 바깥둘레는 1500m나 된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검은오름(물찻)과 더불어 몇안되는 화구호의 하나이다. 백록담이나 사라악, 금악오름 화구호는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있어도 물장오리엔 언제나 검푸른 물이 가득하다.

가물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이며 충암 김정(1520년 유배)의 기우축(祈雨祝)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초가 무성하고 수량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오래전 저 아래 골프장 개설초기에 이곳 물을 끌어다 쓰던 때가 있었고 철관이며 도수로 등 흔적이 아직껏 남아 있어 볼썽사납다.

                                                 여름 만수때의 물장오리 분화구

도내에는 제주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산과 바다 등 곳곳에 남아 있는데 제주의 신으로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한쪽다리는 추자도 인근에 있는 관탈섬에 놓고 다른 한쪽은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지귀도에 놔서 일출봉을 빨래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팡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고 전한다.

섬에 무수히 산재하고 있는 오름들도 치마폭에 흙을 담아가지고 가면서 한줌씩 집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물장오리에도 설문대 할망의 전설이 전해온다.

설문대할망이 제주시에 있는 용연물이 깊다하여 들어서보니 발등까지 밖에 안되고 남군에 있는 어느 물인가는 무릎까지도 차지않아 마지막으로 이곳 물장오리에 와서 성큼 들어가자 빠져 들어간채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더라고 한다.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로 가운데 길이가 가장 짧은 6.5㎞밖에 안되는 영실코스가 있는데 이곳으로 얼마쯤 오르느라면 오른쪽으로 병풍으로 둘러싸인 듯한 바위들을 만난다. 이곳을 오백장군 또는 병풍바위라고 부르며 일명 오백나한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도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스며있다.

설문대할망이 아들 500형제를 거느리고 이곳에 살고 있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간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이려고 죽을 쑤다 발을 잘못 헛디뎌 펄펄 끊는 가마솥에 빠져서 죽과 함께 끊여지고 말았다.

아들들이 돌아와 죽을 떠먹는데 뒤늦게 돌아온 막내 아들이 죽 속의 뼈를 보아 사실을 알고는 형들을 원망하며 혼자 고산리 앞바다에 있는 차귀도로 날아와 어머니를 그리다가 돌로 변했고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돌로 굳어져 지금의 오백장군이 되었다고 전한다.

물장오리 북서쪽 가까이에는 4.3때 유격대가 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테역장오리(테역밭․잔디밭)가 있으며 남서쪽 숲 너머에는 불칸디오름, 그리고 삼을부 신인(三乙부 神人)이 쌀(화살)을 쏘아 사냥을 했다는 쌀손장오리가 서쪽에 마주하고 있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장오리'라고 한다.

# 소슬한 바람에 소담소담 얘기를 나무며 걷는 거문오름길(물찻오름) 

제주시에서 5.16도로(제1횡단도로)를 타고 성판악 휴게소를 가기 직전에 보면 왼쪽으로 표고재배장으로 통하는 숲길로 접어들어 얼마가지않아 왼편 숲너머로 오름 두엇의 능선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 제일 동쪽 것이 산정호로 유명한 검은오름. 과거는 이 길로 거문오름 앞까지 4㎞ 정도의 30여분은 족히 도보로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동쪽으로  남조로의 남북군 경계에 있는 붉은오름 남측을 끼고 들어가는 길이 남조로에서 거문오름 코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뚫려 있으며 사려니숲길도 조성돼 있어 매일 사람들이 북적이는 숲길이 됐다.

오름코앞까지 편안히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하지만 산행길은 역시 걷는 맛이 제격이다. 함께 걷는 동료가 친구여도 좋고 부부라도 좋고 아니면 직장벗들이라도 좋으며 형제자매라도 좋다.

소슬한 길에 소담소담 이야기를 나누며 걷노라면 벌써 마음은 저 복잡했던 생활을 벗어버릴 수 있다.

                                               겨울의 거문오름 정상 분화구

# 10여년 전만해도 소슬한 길에서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숲길로 '상전벽해'

하지만 너무나 편리를 취하고 바쁜 사람들을 위해 검은오름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게끔 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문오름을 오르기 위한 사전작업도 없이 오른다면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거문오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도보로 걷는 것은 검은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생활의 이야기 등을 혼합시키며 삶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은 오름등반을 하는데 더없이 필요하고 오름답사의 제맛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요소이다.

거문오름은 조천, 남원, 표선 등 3개 읍면의 경계선이 마주치는 정정에 위치하고 있다. 표고는 717m, 비고는 150m가 넘을 정도로 가파르지만 나무가 높고 걸리적 거리는게 없어서 걷기엔 그만이다.

                                                      겨울철의 거문오름
숲으로 덮여 검게 보이는데서 거문오름이라고 부른다지만 어원적인 해석으로는 '검을'을 신()이란 뜻으로 쓰인 고조선 시대까지 올라가 보면 이는 신령스런 오름이라는 의미가 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40여분을 오르면 능선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여간해서는 물은 볼 수 없다. 다시 내리막길로 5분여를 내려가면 호수가 펼쳐지는데 장관이다. 어떻게 오름정상에 이런 호수가 있을까 하는 의아함마저 들게 한다.

분화구의 바깥둘레는 1000m 가량이며 호수둘레는 200m는 족히 될 듯싶다. 언제부터인지 이곳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오름아래 표고밭 사람이 몇 마리 갖다 기르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게 이제 30년도 더 오래전 일이다.

                                         단풍이 물든 가을의 거문오름 정상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불었는지 여름철에는 물이 맑지 못하고 연녹색을 띠어 아주 탁하게된 원인이 되고 있다.

분화구 서쪽으로 얇게 눈이 깔린 숲밑엔 노란색 복수초가 목을 내민채 떼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잔설을 속으로 석이면서 피어난다는 꽃, 그래서 별명이 눈석이꽃이라는 복수초. 복수초의 모습이 고지대로 올라올수록 저 아래에서는 봄을 맞을 채비로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 자연이 빚은 천연원형구장 아부오름
 

남조로로 나온 차량은 번영로(옛 동부산업도로)로 향해 대천동 사거리로 미끄러진다. 대천동 사거리에는 대천동과 송당리를 잇는 1112번도로가 있는데 대천동에서 송당 방향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송당마을 남쪽 약 2㎞지점에 얕으막한 뒷동산처럼 보이는 아부오름이 자리하고 있다.

초행자는 오름의
높이가 없어서 길에서는 오름이라는 느낌을 받지못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아부오름

표고는 301m이나 비고(오름 자체의 높이)는 높은 곳이 약 50m이고 낮은데는 10m 정도에 불과해 얕으막한 언덕을 오르는 정도밖에 안돼 길에서 10여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길에서는 저 것이 오름이냐 할성싶게 시시하게 보이지만 실상 산등성에 도착해보면 경이롭다는 탄성이 절로 난다.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큰 분화구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팎으로 잔디를 입혀놓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연상케 하고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용한다면 자연그대로를 이용해 건설비용을 몽땅 아낄 수 있을 정도다.


바깥둘레 1400m, 바닥둘레도 500m나 되는데 바닥에는 낮은 돌담에 삼나무가 울타리로 겹치면서 빙 둘러있다.


분화구의 깊이는 78m의 상당한 깊이인데도 시각적으로는 그 정도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아마도 바닥이 워낙 넓은데다 풀밭으로 덮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한 앞에서 밝혔듯이 이 오름의 비고는 높은 곳이 50m이고 분화구의 높이는 78m여서 산 자체의 높이보다 분화구의 깊이가 더 높다. 즉 산이 깔려있는 지면보다 28m나 더 깊이 패여 들어가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오름은 1999년 광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
이재수의 난'촬영지로 더욱 유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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