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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해뜨는 곳에서 부르는 찬가

섭지코지- 아세요,선채로 돌이 되어버린 전설을

by 여랑 2011. 5. 9.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이제는 어쩌면 이곳보다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섭지코지로 가기위해 읍내중심가인 고성리로 빠져 나온다.

섭지코지는 농협성산포지소 삼거리에서 왼쪽을 방향을 틀고 2㎞정도 가다보면 왼쪽에 성산농수산 앞 삼거리가 나오는 여기서 좌회전해서 1.2㎞정도 들어가면 신양리 삼거리에 닿고 이곳에서 왼쪽을 택해 3.5㎞정도 더 가면 섭지코지 입구 주차장에 당도한다.

섭지코지로 가는 길목입구에는 신양해수욕장이 있는데 수심이 얕고 지면이 평평해 해상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동호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신양해수욕장에서 섭지코지 가는 길이 오른쪽에 바다, 왼쪽에 초원을 끼고 가는 정겨운 길이었는데 이제는 초입부터 아쿠아플라넷이 들어서 있는데다 조금 더 들어가면 휘닉스아일랜드 리조트까지 크게 서 있어 예전의 토속적 정겨움은 훨씬 줄었다.

어쨋든 신양해수욕장을 지나 해안변을 따라 난 길을 쭉 돌아가면 봉긋하게 솟은 언덕에 널따란 잔디밭이 펼쳐진 섭지코지가 나타난다.

신양해수욕장 쪽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옛부터 '태역밭'이라 불리는 잔디밭은 제주의 해안가나 중산간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섭지코지의 잔디밭은 또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이곳에 서니 무량하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한가로움과 여유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 '태역밭'에 소풍을 왔는지 어린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편안하게 보인다.

섭지코지는 일출봉 서쪽에 있는 신양리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와 메달린 자루 모양의 곶(코지)이다. 섭지는 협지(狹地), 곧 좁은 땅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섭지코지의 대표적 경관은 기암괴석이 치솟은 짙푸른 바다해안 절경과 함께 굴곡처럼 펼쳐진 능선에서 아른거리는 노란 유채꽃 물결이다.

섭지코지에 서서 바다쪽을 바라보면 발아래 둘러 15m, 높이 30m의 길쭉하고 커다란 '선녀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하늘나라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곤했는데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욕하는 선녀들의 미모에 반해 훔쳐보려고 다가가자 깜짝 놀란 선녀들이 날개옷도 입지 못한채 하늘로 올라갔다.

옥황상제는 선녀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화가 나 금족령을 내렸다.

선녀들을 보지못한 동해 용왕의 아들이 상사병에 걸려 눕자 한 점장이가 이르기를 "매일밤 선녀들이 내려왔던 자리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말에 동해 용왕 아들은 99일까지 기도를 드리고 마지막 100일째 기도를 드리러 출발하는데 바다가 몹시 거칠어 이튿날 동이 틀 무렵에야 도착했더니 하늘에서 달빛같은 수레를 거둬들이고 있었다.

동해 용왕 아들이 수레 끝을 잡으려고 바다를 박차고 뛰어올랐으나 그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후 그는 선돌이 되어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선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빼어난 경관과 토속적 경관을 맛볼 수 있는 이 섭지코지는 20여년 전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일부 답사가 들이나 관심이 있어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내왕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출봉보다 더 많이 찾는 관광지로 돌변했다.

지금 섭지코지 주차장에는 대형버스로 수십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놓을 정도이다.

1991년 MBC의 인기드라마였던 '여명의 눈동자'촬영장소로 이용된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이곳은 특히 2003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올인'의 무대가 돼 그 세트장까지 있는 등 많은 인기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되면서 국내관광객은 물론 한류드라마가 중국 등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제주를 찾는 중국관광객들까지도 대거 찾고 있다.

섭지코지 언덕에 보면 높이 4m, 가로 8m, 세로 10m로 쌓은 석축이 하나 보이는데 이것은 지방기념물 23호인 신양리 봉수대로 정확한 이름은 '협자연대'이다.

올인 촬영장소와 그 옆에 있는 협자연대

연대는 조선초에 세워져 비상통신망으로 사용됐던 봉수의 일종이다.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방이나 국경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고대 통신법으로 위치와 임무에 따라 경봉수, 연변봉수, 내지봉수로 나뉘었다.

경봉수는 한양에 있었던 봉수이고 연변봉수는 국경이나 해안지대에 설치된 봉수로 연대로도 불렸으며 내지봉수는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였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했는데 국경에서 적이 나타났을때는 두가닥, 해안가까이로 접근하면 세가닥, 적이 상륙하면 네가닥, 접전하면 다섯가닥을 피워올렸다.

제주에도 연대는 이곳 신양뿐아니라 모든 해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됐다. '제주삼읍봉수연대급장졸총록'에 보면 제주에는 25개소의 봉수대와 38개소의 연대가 있으며 별장 378명, 직군 900명 등이 근무했다고 한다.

신양리 연대는 애월 신엄리 '남뜨르'지경에 있는 연대와 더불어 그런대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나는 성산일출봉이 아닌 이곳 섭지코지에서 와서 한참 과거에 읽은 기억이 있는 시인 이생진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떠올랐다.

'술은 내가마시는데 취하는 건 바다가 취하고…'등으로 이어지는데 가물가물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그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을 뒤적여 봤는데 그는 성산포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절망'전문-


성산포에서는

나는 내 말한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술에 취한 바다'중에서-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무명도'전문-


나는 개인적으로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성산포에서 바라보는 조망보다 멋지지는 않지만 더 정겹게 느껴지는데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