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이야기/한반도의 첫봄 대평리로 옵서

세한도가 생각난다면 - 단산과 대정향교

by 여랑 2011. 6. 17.

정오쯤 단산에 도착했다. 단산, 어쩌다 이곳을 지나치다보면 오른쪽으로 가까이 스쳐 지나가기만을 했던 이곳 기슭에 도착해보니 그 밑자락에 대정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도착한 첫 인상이 향교에 어디서 본듯한 소나무가 말없이 우리를 반겨준다. 나중에 생각난 것이지만 그 것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푸르름을 자랑하던 소나무와 너무나 닮았다. 아니 설령 닮지 않았다 해도 왜 그 소나무가 가슴에 각인 됐을까.

적막한 토담집에 굴뚝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고 그 옆에는 강아지와 하얀눈 위에 대비해 푸르름을 자랑하며 서있는 소나무가 있는 한폭의 동양화, 속세의 복잡함을 털어버리려는 마음 한구석의 의식이 발동했을 것이다.

우리는 내려 향교를 둘러본다. 지방유형문화제 제4호로 지정된 이 향교는 태종16년(1416) 조원 목사 때 대정성 내에 창건되었다. 그 뒤 북성에서 동성 외로, 또 서성 외로 옮겨다니다가 효종4년(1653) 이원진 목사 때 향교가 있는 장소가 협소하다 하여 지금의 단산 아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현종10년(1669) 이연 목사 때 현감 조문혁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숙종14년(1688) 목사 이희룡이 중수하였다. 그리고, 영조28년(1772) 현감 이빈은 명륜당과 전사청, 서재를 중건하였으며 헌종 원년(1835) 목사 이장복 때 현감 장시열이 대성전을 중건하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기숙사로 쓰이던 동재와 서재의 배치가 단산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공자를 섬기고 의를 돈돈히 하며 학문에 힘쓴 유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싶다.

경내에는 명륜당, 대성전,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는데 명륜당 편액은 순조 때 현감 변경붕이 주자필을 본받아 게시했다고 전하며 동제(東濟)-강당-의 별칭인 의문당(疑問堂) 편액은 대정사람 훈장 강사공이 단산 북쪽 마을 인성에 유배와 적거하던 추사(秋史) 김정희에게 필을 청하여 편액을 게시했다고 하나 지금은 의문당 현판이 걸려져 있지는 않다.

도난․훼손의 우려 때문에 보관돼 있다는데 예방책을 강구하여 내걸어 놓고 세인에게 대가의 글씨를 접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곳은 향교 재단에서 관리되고 전교 중심으로 매년 4월과 9월에 석존제를 봉향한다.

향교를 나와 단산을 오르기위해 서두르는데 바로 위에 지하수가 나오는 샘이물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산기슭 바위의 틈구멍에서 흘러나와 석천(石泉)이고도 부르는 이 용천수는 옛날 대정현 성안의 물이 마르면 이 샘물을 길어다 썼고 수도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사계마을에 공급되던 수원이기도 했다.

인근동네 청년들인 듯한 몇몇 청년이 트럭에 돼지 한 마리를 싣고와 무엇가를 실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샘이물에 들어가보니 샘물은 말라버린지가 꽤 된 것같다. 여기서 돼지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청년들은 차를 돌리고 가버린다.

새미물 서쪽 고개마루에는 태고종 사찰 단산사(壇山寺)가 솔숲 그늘에 아담하게 들어서 있다. 북쪽마을 인성과 남쪽 마을 사계로 통하는 이 새미고개는 그 마루터기가 단산 남서릉의 안부에 대당하며 길 건너 금산(琴山)으로 이어진다.

남북으로 길게 펑퍼짐한 금산은 이름이 따로 붙었을 뿐이지 단산 남서릉이 뻗어내린 한 줄기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 새미고개에서 즐거움속에 점심식사를 하고 단산을 오른다. 단산, 산방산에서 1㎞남짓한 거리에 있는 단산은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인성리 사이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산이다. 표고는 158m이고 비고(오름 자체의 높이)는 약 110m, 해발 50m이다.

제주의 여러 산들이 봉이나 악, 오름으로 불려지는 것과 다르게 이곳은 단산으로 불리운다.산으로 불리는 것들이 송악산, 산방산, 단산, 한라산 정도이다.

그러나 단산에 오름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산은 바굼지오름으로도 불린다. 옛날 제주도내 산천이 물에 잠겼을 때 이 오름이 바굼지(바구니)만큼 밖에 안보였다는 전설에서 바굼지 오름이라 부르고 뒤에 한자표기에 의해 소쿠리 단자를 써서 단산(簞山)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이는 바굼지오름은 바구미오름의 와전이며 바구미는 박쥐의 옛말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단산은 바굼지 오름의 한자표기이고 '바굼지'는 '바구리'라고도 하는데 바구리에 가까운 옛말 '바구미'는 박쥐의 옛말로서 이산을 산 북쪽 고을에서 보면 마치 박쥐모양을 닮았다하여 처음 '바구미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바굼지로 변하여 지금의 '바굼지오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90년 발간된 정우지(靜友誌)중 대정읍약사에는 밝히고 있다.

쌀․보리 등 저장곡물의 해충인 바구미라는 곤충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박쥐의 옛말이 바구미라 했다니 그렇다면 이 오름의 본디 이름은 박쥐오름인 샘이다.
 

'제주도사논고'의 저자 김태능(金泰能)씨도 "단산은 동서로 날개를 편 박쥐형의 산세로서 바굼지오름은 '박쥐오름'의 와전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라고 했다고 한다.

오르다보니 단산은 여느 오름들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우선 형태가 매우 기다랗게 이어져있고 분화구 있는 것도 아니고 바위산같은 인상이다. 나중에 자료조사를 한바에 따르면 단산은 중산간지대의 오름과 생성과정이 다르다고 한다.

                                                      단산에서 바라 본 산방산
단산은 다른곳에서 보기 힘든 화산재, 화산모래가 퇴적돼 이뤄진 응회암층으로서 해저에서 융기해 형성된 해저화산이란다.

단산을 오르다 밑을 보니 대정향교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옆쪽을 바라보니 굴같은 것이 보인다. 확인해보니 일제의 잔재였다. 이렇게 특이하고 아름다운산세를 가지고 있는 이곳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서쪽기슭에 있고 또다른 하나는 그 동쪽 1백여m 떨어진 곳에 있다. 태평양전쟁의 빨리 종전돼지 않았다면 이 곳도 군사요새가 됐었을 듯 싶다. 우리는 동쪽에 있는 바위봉우리를 오르기위해 위험도 무릅쓰고 꼭대기까지 올랐다.

앞쪽으로 보이는 사계리 일대와 형제섬이 평화스럽게 펼쳐진다. 그리고 달려가면 금방이라도 다다를 것같은 산방산이 바로 코앞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