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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700년전 사람들과의 대화

한국 불교사 다시 써야(?) - 존자암지

by 여랑 2011. 6. 26.
탐라의 불교 전래를 더듬어 본다면 제주는 백제와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었고 백제는 동진과 교류하고 있었으므로 동진의 불교 문화가 백제를 거쳐 제주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고려 초기로 여겨지고 있다.
 
즉 제주의 불교는 백제를 거쳐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라산 영실 서쪽 볼래오름 중턱 해발 1210고지, 정확히는 서귀포시 하원동 산1번지에 있는 존자암지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불교전래 학설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일부 사가들은 존자암지가 기원전 300년 전에 존자암은 석가모니불 재세시 탐몰라주 발타라 존자가 초전법륜한 성지요, 한국 불교 최초의 사찰이란 주장과 함께 이 지역이 부처님이 오셨다 하여 불래악(佛來岳)이라 구전된다고 제기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한국불교의 전래를 새롭게 써야할지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이 고구려의 소수림왕 2년(372)이라는 한국불교전래사를 새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불교전래는 고구려가 먼저가 아니라 제주를 통해 백제로 들어갔고 한반도에 전파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런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고 존자암도 13~15세기경에 지어졌으며 17세기에 다시 시설 됐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대박물관 조사팀의 발굴조사에서도 고려후기때 창건된 사찰이라는 유물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종교계 인사들은 석가모니의 16제자중 제6존자인 발타라(跋陀羅)가 불법을 전파하며 살았던 탐몰라주(耽沒羅洲)가 현재의 제주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 백제를 통해 제주로 전래된게 아니라 탐라를 통해 백제로 전해졌다(?)

이는 존자암이 동국여지승람,남사록,고려대장경 법주기 등에서 탐라국(耽羅國) 삼성(三姓)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해 적고 있고 존자암기에 '존자암은 고.부.양 삼성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비로소 세워졌는데 3읍이 정립된 후에까지 오래도록 전해졌다'고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청규 관장을 중심으로 한 제주대박물관 발굴조사단은 발굴조사 결과 선방과 대웅전 등의 건물터와 목탑의 심초석 등을 확인하고 전체적인 가람배치의 윤곽을 밝혀냈다.

또한 경내에는 국태민안을 기원한 국성재를 지냈던 제단의 유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절터 북쪽 모퉁이에 자리한 도내 유일의 부도(고승의 유골을 안치한 돌탑)도 발견됐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 8각의 기단위에 놓인 하대를 옆에서 깎아 들어가 직경 23cm의 사리공이 돌출되도록 만들어진 보기드문 명품으로 고려 후기에 이 절을 중창한 조사를 모셨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불가의 8각당을 뜻하는 8각의 기단은 고려시대 부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서 이 절터에서 고려 청자편.기와편이 출토되고 있는 점도 존자암이 고려후기에 지어졌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존자암 세존사리탑
제주산 현무암으로 건조된 도내 유일의 사리탑인 존자암 세존사리탑은 여말~선초로 추정되는 축조양식과 건조수법, 우리나라 전통 8각 원당형 사리탑의 기본양식 등 국보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지난 2000년 문화재로 지정됐다.

# 유물은 아직 고려후기 시대밖에 못찾아

서귀포시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존자암터에 대한 복원공사에 들어가 98년에 요사채를 복원했고 2002년 정면 5칸.측면  3칸의 연면적 95㎡ 규모의 팔작지붕 대웅전과 정면 3칸․측면 3칸 25㎡ 규모의 국성재각(나라를 수호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 복원공사를 최근 마무리했다.

존자암에 대한 기록은 고려대장경 제30권 법주기(法注記)-'부처님의 16존자(제자) 가운데 6번째 발타라존자가 자기 권속 9백 아라한과 더불어 탐라라주(耽沒羅洲)에 많이 나누어 살았다'를 비롯해 동국여지승람(1481년), 1677년 임제가 제주목사로 재직중인 부친을 뵙기 위하여 왔다가 제주의 풍물을 적은 기행문인 남명소승(南溟小乘), 1601년 청음 김상헌이 길운절과 소덕유의 모반 사건에 대한 안무어사로 왔다가 쓴 기행문인 남사록, 1653년 이원진 목사가 저술한 탐라지(耽羅誌), 1702년 제주목사로 왔던 이형상이 저작한 읍지 남환박물(南宦博物), 1918년 이능화가 간행한 조선불교통사 등에서 다뤄지고 있다.

존자암과 관련된 주장으로 먼저 기원전 창권을 내세우는 법륜사 주진아 주지는 "제주는 한국 불교의 시발지이며 그 절이 존자암"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고려대장경 법주기의 탐몰라주는 탐라 즉 제주이며 각종 문헌과 존자암터에서 발굴되고 있는 유적과 당시 제주도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바다를 통해 불교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존자암은 지금으로부터 2535년 전 석가모니불 재세시 탐몰라주 발타라 존자가 초전법륜한 성지요, 한국 불교 최초의 사찰로 추정되며 이 지역은 부처님이 오셨다 하여 불래악(佛來岳)이라 구전되고 있고 주장한다.

또한 향토사학가 김봉옥씨도 "존자암은 2400여년 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사찰일 가능성이 크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북방대륙 경유의 전래이고,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48년 인도의 불교국가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공주 許黃玉과 혼인했다는 설화 등을 근거로 가야 불교는 고구려보다 300여년 전에 남방 해양 루트를 통해 전파됐을 가능성이 학계에서 제기되어 왔으며 제주 불교는 가야 불교보다 400여년 앞서 남방 해양 방면으로부터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복원한 존자암지 대웅전
# 무릇 보시는 머무르는 마음없이 해야

반면 이에 반론을 펼치는 동국대 불교학과 목정배 교수는 "탐몰라주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적 우주관에서 유래된 상상의 나라이고 실제적인 지명이 아니다. 존자암은 석가모니의 제자 오백라한 중 학덕이 높은 16라한을 모신 자그마한 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튼 서귀포는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20여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이 존자암지에 대한 복원공사에 착수해 지난 98년 요사채를 복원하는 한편 2002년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 연면적 95.04㎡에 팔각지붕 형태의 대웅보전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던 국성제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연면적 25.83㎡의 맞배지붕 형태로 복원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 복원공사 만등불사 대법회까지 열었는데 거기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국회의원 등 인사들까지 참석했다니 제주의 불교중흥을 빌러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뜻이 있어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썩 보기좋은 모습만은 아닌 것같다. 더구나 2002년 11월은 대통령 선거를 한달여 남겨둔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二生其心)'이라 했다. 무릇 '보시를 할 때면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 해야 진정한 보시'라는 것인데 그들에게 이 금강경 한 구절을 권하면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