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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동 傳왕자묘 석상의 비밀<상> 몽골 초원을 답사하노라면, 광활한 대지 곳곳에 할석을 땅에 박아 사각형으로 만든 돌궐식 묘지가 눈에 띈다. 또 간간히 사슴문양을 새긴 아름다운 암각화 석주들, 우리네 거욱대와 같은 어워가 사람을 맞는다. 제주 문화가 약 100년의 몽골 지배 동안 문화적 습합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목축, 언어, 의복, 음식 등에서 아직도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제주의 동자석 또한 한반도와는 다르지만, 오히려 알타이계 석상과 유사한 특징이 많다.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문화전파설은 차치하고라도 문화의 동시적 발생과 등장은 우연치고는 너무 유사한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석상 좌우로 세울 때 각기 다른 손 올라가는 것, 자연에서 배운 대칭 감각 제주에 '개역'이 라는 음식이.. 2011. 4. 30.
백호 임제 이 시는 백호 임제가 35세가 되던 해인 1583년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로 발령받아 가는 길에 송도(松都)에 이르러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을 찾아가 술상을 차려놓고 지은 시조이다. 이에 임제는 조정으로부터 '기생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비난을 받았는데 백호는 그만큼 자유분방한 생각을 가진 인물로 그에 대한 일화들은 한결같이 임제의 반봉건적 지향, 민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 는 16세기 제주에 관한 기록을 남긴 남명소승(南溟小乘)》의 저자로 1577년 제주를 찾았던 인물이다. 임제는 1577년 29세에 알성시(謁聖試.임금이 문묘(文廟)에 참배할 때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급제하자, 바로 그 사실을 제주목사로 있는 부친 임진에게 알리기 위해 험.. 2011. 4. 30.
돌하르방-제주의 어제와 오늘 두번째 관덕정이 아무런 말없이 500여년을 지켜오고 있는 건축물이라면 관덕정 사각에 위엄있게 어쩌면 묵직하게 서 있으면서 무슨말인가를 하는 것같은 돌하르방은 색다른 돌문화를 보여주는 제주문화를 물씬 풍기는 석조물이다. 우리나라의 걸죽한 문화재가 탑, 석상, 부도 등 돌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듯이 제주도 돌의 고장이라 불리울 만큼 돌과 관련한 민속자료가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 돌하르방은 제주의 이미지를 살려주는 민속자료(2호)로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관덕정앞 돌하르방 부리부리한 눈, 우뚝한 코, 꾹다문 입, 불거진 뺨 등 어디에 있든 퍽이나 인상적인 돌하르방은 이제는 각종 행사때 로고로 사용되고 상품브랜드로까지 확대되며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지.. 2011. 4. 30.
관덕정-제주의 어제와 오늘 첫번째 제주의 엣이름은 탐라, 탁라, 영주 등 여러가지로 불리웠고 제주의 명칭은 고려말이나 조선초부터 형성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제주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탐라시대에 대한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없고 유적도 거의 없는게 사실이다. 또한 고려때까지의 유적도 그리 많지 않아 제주의 고대사를 정리하는데 많은 학자들이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사료나 유적들이 많이서 그런대로 제주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조선초기 유적이면서 목조건물로 제주시내에서 대표적인 곳이 관덕정이다. 관덕정은 세종 30년(1448) 당시 목사 신숙청(辛淑晴)이 군사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건축한 훈련청으로 미학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도내에 현존하는 관아건.. 2011. 4. 30.
추사 김정희-잘 나가던 정객에서 유배객으로 차는 동광검문소를 지나 저항의 땅, 대정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정지역은 말그대로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볼만한 곳도 유적도 많다. 수많은 정객들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으며 일제의 아시아정복을 위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곳이다. 어디를 먼저 볼까 의논하다가 가까운 인성리에 있는 추사적거지부터 보기로 했다. 추사적거지는 동광검문소를 지나 서쪽으로 9㎞를 더 가다보면 인성리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른쪽 대정읍성 동문사이로 난 마을길을 따라가면 바로 길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헌종 6년(1840) 윤상도 옥사가 재론되면서 그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현 인성리에 유배된 인물이다. 윤상도는 1830년에 호조판서 박종훈 등을 탄핵하다가 군신(君臣)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죄로 추자도.. 2011. 4. 30.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제주장례' 어느지역이던 함께 살다간 사람이 임종하면 어떤 형태로든 장례를 치르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제주의 장례풍습은 섬의 문화만큼이나 독특하다. 임종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조관이다. 조관을 해야 조문객을 받을 수 있고 성복제를 시작으로 장례의 모든 의식이 진행되기 시작한다. # 임종후 첫 일이 '조관'....사돈집서 팥죽 쑤어와 대접 제주에서는 조관할때 전통적으로 사돈집에서 팥죽을 쑤어 오는게 관행이었다. 상제들과 친지, 상가를 돌보는 사람들을 위해 쑤어 오는 팥죽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져온다. # 첫 제례는 '성복제'....발인전날 신시에 '일포제' 봉행 성복제는 입관성복한후 초상에서 처음으로 치르는 제례이며 발인전날 신시에는 일포제가 치러지는데 이 제례의 제물은 맏딸인 여상제가 차리는 경우가.. 2011.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