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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야기/제주의 언어/문화/민속

이제는 보기힘든 인심 - 제주의 혼례

by 여랑 2011. 6. 17.

어쩌다 며칠에 한 번은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이는 포근한 날도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찬바람이 몸에 휘감겨 오는 조금은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씨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답사팀은 약속장소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답사의 길에 오를 준비를 하고 차에 오른다.

항상 그렇지만 평소에는 그저 그렇게 연락도 못하면서 지낼때도 많지만 그래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갑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무슨 개인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만난 회원들이 아니어서 너무 부담이 없다. 단지 답사라는 것이 좋고 삶의 터전인 제주를 한곳이라도 더 보고 알려고 만난 사람들이다.

재잘거리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벌써 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어느곳으로 갈까 한동안의 논란 끝에 대정에 있는 단산과 그밑에 있는 대정향교를 보고 봄이 제일 빨리 온다는 안덕면 대평리와 서건도 등을 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잡아 본다.

지난번 뒷풀이에서 좁고 세밀히 보기위해 한 읍․면씩 돌아가며 돌아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런 답사 스케줄에는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전에 약속도 잡아놔야 하고 여러가지 자료도 준비해야 되는데 사정이 안돼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이렇게 목표를 잡았다.

서부관광도로를 타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차도 많고 또한 그렇게 잘 닦여진 길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중산간도로를 이용하는게 답사의 운치에도 맞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아 그쪽을 택했다. 차는 한림을 가기전에 금악으로 방향을 틀더니 이제 청수로 접어들고 있다.

청수에서 점심을 먹을 몇가지를 사려고 차를 세웠는데 구멍가게로나 불러야 될듯한 슈퍼 맞은편 집에서 혼인을 치르려는지 천막을 치는 모습으로 부산하고 골목 입구에서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있다.

이제는 시골에나 와서야 볼 수 있는 풍경이 돼버린 결혼식때 돼지잡는 모습은 시골의 넉넉한 입심과 인심을 엿볼수 있어 정감이 간다. 내가 결혼할때도 저렇게 집에서 돼지를 잡고 일을 치르지는 못했다.

돈이면 뭐든지 대부분 다 되는 현실에서 그리고 효율성이니 하면서 간편한 것을 찾는 작금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마다 차 한 두 대씩은 갖고 있어 그 옛날 걸어서 제주시를 다닐때보다 더 여유있게 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전과 비교해 더욱 쫓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그래서 돈만주면 이리저리 칼질 다하고 배달까지 해주는 편리함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여러사람이 모여 보릿짚으로 그슬리고 전각․후각등 12각으로 나누어 자르고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간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 털어넣는 그맛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제주의 혼인 풍습은 섬의 독특한 문화만큼이나 특징을 갖고 있다. 지금은 당일 잔치도 많이 하지만 전통적인 제주의 결혼은 닷새동안 이어지는 행사이다.

혼례 이틀전 음식마련을 위한 '돗 잡는 날'을 시작으로 가문잔치-잔치날-신부집 사돈잔치-신랑집 사돈잔치로 이어지는 닷새이다.

이러던 것이 사회가 산업화로 복잡해짐에 따라 혼례 당일에 사돈 사이의 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잔칫날 이후의 이틀동안의 사돈잔치가 먼저 사라지고(1960년대부터) 이후 이제는(1990년대 이후) 돗잡는 날도 보기가 시골동네에서조차 쉽지 않는 시절이 됐다.

아직도 시골동네에서는 집에서 결혼 음식대접을 하는 곳이 많지만 대부분 가문잔치에 이은 잔치날 이틀에 머물고 돼지를 직접 잡는 것도 없이 주문해서 사용하고 있어 옛날의 정겨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이따금 가까운 친척들과 동네어른과 아낙들이 혼인하는 집에 모여들어 이틀전부터 돼지를 잡고 전을 부치고 음식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볼 때면 어릴적 어머니 따라 잔칫집에 갔던 시절이 정겹게 그려진다.

어머니가 동네 잔칫집에 가면 애들도 같이 따라가서 주변에서 놀고 그 중간에 맛있는 음식을 몰래(?)갖다주었고 설사 이러한 광경을 누가 보더라도 아무리 당시가 물자가 궁핍하고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타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릿고개 시절에 동네에 잔치나 제사, 장례가 있을 때면 가장 즐거운 이들은 어린아이였다.

잔치 전날 부계․모계 친척들이 찾아들어 친척들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확인하는 가문잔치는 육지에는 없는 제주도 특유의 결혼 풍습이다. 부조도 집안단위로 하지않고 개인별로 한다.

남편과 아내가 별도로 부조를 하며 이러한 관습은 일부 개선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또 제주에서는 뭍처럼 결혼전날 익살스럽게 함을 파는 의례는 없으며 대신 결혼당일날 신랑이 상객과 함께 신부집을 찾아가는데 이때 신랑측 친족대표가 납폐함(納幣函․홍세함이라도 한다)을 신부집 난간이나 대청에 놓고 신부 집안의 허락을 기다리는 문전코시(門前告視)가 혼례의 의식중 가장 엄숙한 시간이다.

홍세함 속에는 새살림의 기초가 되는 무명 한 필이나 광목 한 필을 넣어 노란 보자기로 싸고 예장을 넣어 한지나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매듭을 짓는다.
 
원래 예장은 신랑이나 신랑 아버지가 신부 집안에 쓰는 것으로 혼인에서 중요한 문서로 이제는 신랑 아버지가 직접 쓰지 않는 집안도 많지만 대부분 매듭을 묶고 나서는 신랑 부친이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중요한게 예장이었음으로 신부측에서는 엄격하고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며 이따금 신부측에서 예장이 잘못됐다고 할 경우 다시 고쳐 써야 했기 때문에 신랑측에서는 지필묵을 지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뭍과 다른 또 하나의 제주의 독특한 결혼풍습은 결혼식이 끝난후 신랑․신부가 바로 신혼여행으로 직행하지 않는다. 신랑․신부는 시댁에서 폐백을 마친후 저녁까지 기다리다가 신랑․신부측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가진후 많이 늦지않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와 시댁에서 하루밤을 지낸후 다음날 신혼여행지로 떠난다.

특히 신랑 친구들은 결혼전날에 와서 하루종일 시끌벅적하게 놀고 즐기면서 하는 일이 있는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배어와서 신랑집 대문에 세우고 색종이와 풍선 등과 조합해 예쁜 아치형 임시 문을 만들고 아치 가운데 신랑․신부 이름을 써놓는데 이를 '솔문'이라 하며 친구들이 해야할 중요한 일중의 하나로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시내에서는 완전히 사라졌고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는데 이젠 시골에서도 솔문이 없는 신랑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삶이 바쁘고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전통적으로 혼례의 중매는 여자가 중매인으로 나서지 않고 남자가 나서는게 대부분이며 육지에서는 남자측에서 신랑의 사주단자를 여자측에 내주고 궁합을 보는게 관례이나 제주에서는 여자측에서 사주단자를 주고 남자측에서 궁합을 보고 택일을 한다.

특히 우리가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잔칫날 윷놀이를 즐기는 풍습은 사실상 해방이후에나 생긴 것으로 길어야 반백년 정도밖에 안된 것이다.

또 신랑과 함께 상객(우시) 서너명이 신랑이나 신부와 함께 따라나서는 것이 전통적 관례이나 최근에는 점차 신랑 신부의 나이 어린 동생들까지 혼례 당일 신랑집이나 신부집으로 그 일행과 함께 따라가는 경향이 뚜렷한데 이는 결혼 다음 다음날로 이어지는 가문잔치가 결혼식날에 겸해서 해버림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혼수마련은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번거롭고 부담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조사에 따르면 경상도와 함경도, 평안도 일부지역은 신랑측에서 혼수를 준비하는 지역도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내 대부분의 지역에서처럼 제주지역도 혼수 준비는 신부측에서 담당했다.

땅이 메마르고 가난한 실정에서 생존자체가 문제시 됐던 제주인의 삶에서 딸들의 혼수 마련이 얼마나 지난했을까를 느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무리 조촐한 혼수라도 딸들의 혼례때마다 마련해 주는 일이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 대부분의 제주의 딸들은 시집갈 때 필요한 혼수를 자력으로 마련하는 삶이 많았는데 물질을 하거나 방직공장 등으로 나가 제혼수를 마련하는 예가 흔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제 혼수를 마련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도 이따금 없진 않으나 찾아 보기 어려운 현실을 아쉽다고 해야할지 좋은 세상이라고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우리는 내려 간 한점에 소주를 얻어먹기위해 그곳 사람들한테 청해본다. 물론 거절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했지만 너무 반겨준다.

하기는 찬칫집 인심이 이 정도 되지않을 수야 없겠지만.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 간 한점을 집어 들어 굵은 소금을 푹 찍고 입속으로 집어넣으니 박주에 변변치 못한 안주라도 그 맛이 최고다.

혼인하는 사람이 신랑인지 신부인지 물어보지 못했지만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기원하면서 골목길을 나왔다.

차는 계속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린다. 산간마을을 경유하며 계속 달리더니 길을 잘못들어 일주도로인 무릉으로 나와버린다. 하지만 어쩌랴 '어디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빨리 갈일도 없는 마당에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가는 것도 괜잖다 생각하며 차창에 기대니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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